코리안 타임과 원자시계
지금부터 삼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나라에는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이 있었다. 만날 약속을 하고서
30분 정도 늦게 나타나는 것에 대해 늦게 온 사람이나 기다린 사람이나 크게 문제
삼지 않았었다. 뿐만 아니라 기차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 수단들도 30분 정도 연발,
연착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 시절의 대부분의 시계는 하루에
수 분 정도 틀렸고, 하루에 수 초 틀리면 아주 좋은 시계였다. 그 당시에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보내오는 시보가 제일 정확하다고 여겼으며, 그 소리를 들으며 시계를
맞추었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시계분야에서도 엄청난
발전이 있었다. 오늘날 손목시계는 비싼 물건에 끼워서 경품으로 줄 정도로 흔해졌고,
그런 시계들조차도 옛날 최고의 시계보다도 정확하다. 어느 시골 어른이 "큰
시계를 샀으니 작은 손목시계는 끼워달라"라고 했다던 옛날의 우스개 소리가
현실로 된 것이다.
그러면 그 당시의 방송국 시계는 과연 정확했던
것일까? 그 때만 하더라도 우리 나라 방송국에서는 일본의 JJY 시간방송을 수신하여
시계를 맞추었다. 그러다가 1978년부터 우리의 원자시계를 바탕으로 우리 나라의
시간을 정하게 되었으니 시간 분야에서의 독립은 광복이후 30년이 더 걸린 셈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시간이 아직도 일본에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잘 못 알고 계신 분들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나라의 지리적 위치에 기인한
오해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각 나라의 표준시간은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경도 15도 마다 한 시간씩 차이가 나도록 정하고 있다. 물론 국경선, 강이나 산과
같은 지형을 고려하기 때문에 반드시 15도가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한반도는 그리니치 천문대보다도 9시간이 빠른 동경 135도와 8시간이 빠른 동경 120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의 경우는 135도선이 일본 본토를 지나고,
중국의 경우는 북경이 120도에 가깝기 때문에 각각 이것들을 채택하고 있다.
우리 나라는 현재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표준시간을 정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한반도 중심을 지나는 127.5도를 기준으로 시간을 정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그리니치 천문대와 8시간 30분 차이가 나게 되어, 한 시간씩 차이가
나도록 정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어긋나는 일이다. 지금과 같이 표준시간을 정하면
우리 나라는 자연스럽게 30분 정도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셈이 된다. 미국이나 유럽사람들이
여름철에 적용하는 일광절약시간제를 우리는 일 년 내내 시행하는 셈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부지런하다는 것은 어쩌면 이 시간대를 사용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국가 표준시계로 사용되고 있는 원자시계는 수만 년 또는 수십만 년 동안에 일초가
틀릴 정도로 정확한 것이다. 이런 정확한 시계는 오늘날과 같은 정보 통신 분야에서의
발전을 이루는데 필수적인 것이다.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이제는 직장에서 "초 경영"이니 "초
관리"니 하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일초까지도 아끼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현대의 일상 생활이 시계처럼 착착 움직여 가는 것을 보면서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과학기술의 발달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모든 것들이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일 것을
요구 당하고 있고 또 그렇게 되어 가고 있으니, 옛날과 같이 느긋함을 누릴 여유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직장 생활은 원자시계와 같이 정확하게 움직이더라도
생각만큼은 코리안 타임과 같은 여유를 계속 유지하고 싶은 것은 나의 지나친 욕심일까?
(끝).
(2002년 1월 22일, 이호성 수정)